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425

타이핑 소리 노트북의 액정이 맛이 간 이후로 거의 데스크탑처럼 사용하고 있는데, 노트북의 본체는 각종 케이블들만 연결된 채로 구석에 찌그러져 있고 책상의 전면에는 랩에서 꿍쳐 온 LCD 하나와 예전에 억지 부려서 산 10만원 정도 하는 기계식 키보드가 놓여 있다. 이 키보드 처음 사고 나서는 참 좋아라 했는데, 결국은 시끄러워서 랩에서는 못 쓰고 방에 가져다가 구닥다리로 썩히고만 있었지. 그러다가 드디어 노트북 액정이 사망하고 데스크탑처럼 붙박이가 되고 나서야 진가를 발휘한다. 어차피 방도 혼자 쓰니, 타이핑 소리에 귀를 부여잡고 괴로워할 방돌이도 없다. 느낌. 찰랑 찰랑. 화면에 뭔가를 두드리는 느낌이 좋다. 찰랑 찰랑. 그 소리가 좋다. 2009. 12. 2.
밤은 너그럽다 밤은 너그럽다. 낮에 한다면 민망할 행동들도 충분히 인용해 줄 수 있다. 낮에 생각하면 부끄러울 것들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능하지 않을 것들을 생각해 본다. 지나간 뭐시기 뭐시기. 아직 오지 않은 뭐시기 거시기. 지금껏 저지른 부끄러운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저지를 지 모르는 민망한 것들을 상상한다. 밤은 너그... 음... 역시 민망하다. 술이 덜 취했다는 증거. 밤이 항상 너그러운 건 아닌 모양이다. 뿌쓰네 썼던 글을 지워야겠다. 밤은 밤에만 너그럽다. 또 내일 낮이 올 것임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2009. 12. 2.
Grizabella를 위하여 (젠장. textcube에서는 mp3를 올릴 수가 없음. 모든 음악은 youtube 링크로 대체) Grizabella는 고양이다. Jellicle 고양이 답게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갖고 있다. Jellicle 고양이들은 하나 같이 평범한 이름을 갖지 않는다. Grizabella는 Glamourcat이었다. 인간 세상으로 치면 술집 작부 격이다. 지금의 Grizabella는 늙고 추하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모습은 이제 없다. 누구나 그녀를 피한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도 잡아주는 사람은 없다. 고양이 흉내를 내려고 꼬리를 흔들어도 같이 웃고 즐거워해 줄 고양이는 없다. Grizabella는 외톨이다. 화려했던 외톨이. Grizabella는 기억한다.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 행복했던 과거. 지금은 늙고 추하고.. 2009. 11. 20.
Billie Holiday, "I'm a fool to want you" Billie Holiday가 부른 "I'm a fool to want you". 얼마전에 나온 샤넬 No. 5 광고에 나오는 노래. I'm a fool to want you I'm a fool to want you To want a love that can't be true A love that's there for others too I'm a fool to hold you Such a fool to hold you To seek a kiss not mine alone To share a kiss the Devil has known Time and time again I said I'd leave you Time and time again I went away But then would come the.. 2009. 11. 19.
별똥별 유성. 별똥별. 별이 똥을 내지른다. 그것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극히 짧은 순간. 아름답다. 하늘 위의 어느 천체보다도 아름답다. 자체로 별이기에 별똥이라 하지 않고 별똥별이라 한다. LG동 옥상에 담배피러 올라갔다가 하나를 보았다. 유성우라고 하지만, 그것도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하는 것이지. 겨우 하나를 보았다. 망막에서는 사라졌지만, 뇌리에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무척이나 밝았다. 2009. 11. 18.
이성미 한 달 만의 글. 무릎팍에 나온 이성미를 보았다. 보는 내내 겹쳐지는 얼굴이 있어서 불편했지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는 못하겠더라. 이성미가 내비치는 그 성격마저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이성미를 쳐다봤다. 나는 사실 이성미를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다른 얼굴을 보았고, 다른 목소리를 들었고, 다른 성격을 보았다.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그다지 기분 좋은 꿈은 아닌, 그런... 적당한 몽롱함. 술 먹은 것도 아닌데 취해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새삼 생각한다. "이 기억은 참으로 깊게 패여 있었구나." 다음에. 이 다음에 또 TV에서 이성미를 보게 되면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은 없을 것 같다. 한 번으로도 충분하고 이미 흘러 넘친다. 술이 고프다. 굳게 .. 2009.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