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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짐정리 1

by Lbird 2009. 12. 20.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느니 짐 정리를 해야 하는데, 사실 보낸 시간에 비하면 놀랍게도 정리할 짐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몇가지, 택배회사 박스에 마구 구겨 넣어 보내기엔 마음에 걸리는 물건들이 있다.

그 첫번째는 지금 연구실 벽에 걸려 있는 1000pcs짜리 직소 퍼즐들이다. 단순히 맞추는 데에 걸린 시간도 시간이지만, 맞추는 동안 들었던 생각들이 연구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들을 볼 때마다 돌이켜 지는지라 역시 가볍지 않은 물건들이다. 솔직히 모두 가져가고 싶지는 않다. 그것들은 이 곳 포항에 속한 것들이고, 이미 나는 이 곳에서의 기억을 땅에 묻고 가리라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리라고 마음을 먹고 나도, 머리 속의 기억이야 묻고 나도 언젠가는 스믈스믈 기어 나오기도 할 것이고, 지웠다고 완전히 지워지지도 않는 것이니, 굳이 꺼내볼 생각이 들면 꺼내 볼 수도 있는, 말하자면 잃어버리지 않는 것들이다. 반면에 물건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버리고 가면 정말 버리는 것들이다. 내 머리 속에 근거를 두는 기억이라는 것과는 다르게, 물건들은 내 손을 떠나면, 남이 아무리 잘 관리해 주겠다고 해도 결국은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다. 연구실 벽에 걸린 채로 그냥 두고 싶지는 않다. 땅 파서 묻고 싶지도 않다. 가져가고 싶지도 않다. 제일 좋은 것은 본래 그것들이 속한 곳으로 보내주는 것인데, 지금은 도대체 어디로 보내야 그것들이 목적지에 닿게 될 것인지, 목적지에 닿더라도 버려지지 않고 보존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퍼즐들 중에서 특히 처치 곤란인 것은 클림트의 키스이다. 그건 원래가 한 사람에게 속한 물건들인데, 그건 본래 주인이 그 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고, 그 퍼즐을 완성하는 동안 내 머리를 지배하던 사람이 한 사람이었다는 소리이다. 물론 지금은 어찌해 볼 수가 없다. 전화번호는 봉인되었고, 주소는 알 수 없다. 주변의 인맥을 동원한다고 해도 알 수가 없는 것이, 몇 해가 지나는 동안 그와 관련한 나의 인맥도 함께 붕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정말 처치 곤란이다. 버릴 수도 없고, 가져갈 수도 없고, 아무에게나 줄 수도 없다. 포항에서 지낸 16년 세월을 통째로 마주하는 기분이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일 집에 다녀오기 전에는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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