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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감기 진행 상황

by Lbird 2004. 10. 20.
남들은 목감기 따로, 코감기 따로 하는 식으로도 걸리는 모양이지만,
나의 경우는 감기가 진행하는 순서가 항상 같다.

일단, 시작은 미열. 사실 이것으로는 감기의 시작임을 알 수가 없긴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은데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발이 이유없이 따뜻하다고
느껴지면, 왠지... 하면서 알 수 없는 불안이 시작된다.
또 따지고 보면, 감기가 걸린 것을 일단 확실히 알고 난 다음에, 며칠전에
내 상태가 어땠더라? 하고 생각해 보면 항상 미열이 있었으니 그걸 그냥
시작이라고 하는 게다. 미열이 있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지나갈 수 있으니까.
대개 이 상태에서 하루 정도가 간다.

그 다음은 코. 이제는 감기를 확실히 의심한다. 코가 부쩍 건조하고
숨을 들이킬 때 찬 공기가 코를 통과하는 느낌이 남 다르다. 아픈 것이라
하기는 그렇고, 신경이 쓰이는 정도라고 해 두자. 이런 상태에서는
하루밤을 자고 나면 의례 코가 막힌다.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재채기. 이제는 주변 사람들도 나의 감기를 의심한다.
코를 통과하는 공기의 쓰리고 색다른 느낌 때문에 나의 뇌는 분명 코에
이물질이 들었다고 간주하고는, 폐를 일순간에 부풀려 공기를 빨아들인 다음에
코와 목을 닫고 폐를 압축해 압력을 높인다. 짧은 순간 충분한 압력이 얻어지면
이어 기도와 코를 갑자기 열어 폭발시킨다. 그리고 내 몸안에 들어왔던
감기 바이러스의 일부가 다른 숙주를 찾아 공기중으로 함께 뛰쳐 나간다.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눈이 시큼해진다는 것이다.
아주 시큼한 무엇을 먹었을 때처럼 눈을 똑바로 뜨기가 힘이 들고, 눈은 항상
눈물에 젖어 있다. 재채기가 임박했을 때에는 특히 심해져서 전후 수 분 간은
실눈을 뜨고 연신 눈물을 닦아내야 한다. 재채기는 코가 건조해지던 날의
오후쯤부터 시작된다.

하루를 자고 일어나면 한쪽 코가 막혀 있고 반대쪽 코의 휑한 느낌은 엄청나게
커져 있게 된다. 숨을 쉴 때마다 괴롭고 재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나온다.
자연히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제는 미열에 불과하던 것이 굳이 얼굴에 손을 대 보지
않아도 열기를 알 수 있을 만큼 번진다. 슬슬 목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 정도에서 하루를 지내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갑자기 놀란다. 목이
쓰라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한움큼이나 되는 가래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아... 아프다. 쓰러지고 싶다."

사실, 그대로 쓰러지든, 아니면 일어나서 일상생활을 계속하든, 감기의
진행에는 그다지 큰 영향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약을 먹고 안 먹고의
차이도 별로 없다. 약도 없는 병에 내 몸이 저절로 반응하여 퇴치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래도 무리를 해서는 안된다. 자칫하면 이제껏 기회만
엿보던 몸살이 덤벼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가래가 끓기 시작하면 재채기는 많이 줄어든다. 대신에 기침으로 바뀐다.
역동성에서 본다면, 기침은 재채기에 비해서 훨씬 볼 품이 없다. 재채기가
폐를 크게 부풀리고 코와 목까지를 막고 엄청난 압력을 발생시키는 반면에,
기침은 폐를 크게 부풀리지도 않고 기도를 잠시 막았다가 풀어내는 정도이다.
원래가 카타르시스는 그 선행하는 사건이 화려할 수록 더 큰 거 같다. 그래서
재채기를 거창하게 하고 나면 느껴지는 잠깐의 시원함이, 기침에서는 없다.
기껏해야 기도에 붙어 있던 가래를 뭉쳐서 몸 밖으로 꺼냈다는 안도감 정도이다.

기침은 목소리의 변화를 가져온다. 어쩌면 이것은 기침 때문이라기 보다는
재채기가 물러가면서 코에 남긴 몇가지 심술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기침이 찾아오고 나면 더이상 몸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단지 증상의
차고 기우는 정도가 있을 뿐인데, 대개의 경우 아침이 가장 괴롭고 점심을
지난 오후는 갑자기 감기가 다 나은 것처럼 호전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증상이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고 기어이 열에 들뜬 채로 불편한 잠에 든다.

이 상태가 며칠이나 계속될 것인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감기가 오기 전에
얼마나 피로했었는가에 달려 있다. 실제로 감기가 걸리고 나서 아무리 몸조리를
잘 해도 감기가 빨리 물러나게 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평소에 잘 해라!"

나의 지금 상태는 기침이 나의 목과 몸의 일부를 지배한 상태다. 감기군의
강력한 동맹군인 몸살군은, 감기군이 보낸 전령을 만나지 못한 모양이다.
몸살군은 전장에 아직 오지 못했고, 나는 적의 원군이 오기 전에 감기군을
몰아내야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데다 적의 원군이 언제 올 지 알 수 없어
불안한 전투가 계속된다. 그 동안 나의 방비가 비교적 튼튼했었기를...
난전이 되고 나면 지휘자가 할 만한 일은 퇴각 명령을 내리는 일이거나
사로잡힌 적장의 목을 베는 일 뿐이다.

그 전까지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나의 병사들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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