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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질

초라함.

by Lbird 2009. 4. 20.
게시일 : 2002/11/17 (일) AM 05:29:06     조회 : 7

서로간에 참으로 오랫만에 만나본 방돌이와 함께
숯불구이통닭에 맥주 두병을 시켜서 먹었다.

맥주 몇잔에 물론 양도 차지 않지만 그럭저럭
아른한 기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역시나 오랫만에
먹어본 닭이어서 그런지 두시간쯤 자고 나서 속이
불편해서 잠이 깨 버렸다. 다시 잘려니 잠은 안오고
불현듯 든 생각 하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급기야 4시가 좀 넘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전화기 들었다 놨다 하다가 그냥 샤워하고 랩에
올라와 버렸는데...

자다 깨서 들었던 생각중에 이런 것이 있었지.
내 사는 모양새가 알고 보면 참 초라한 것이더라는 것.
그런 생각이 가장 심하게 들었던 건 작년 봄쯤이었었지.
서른이라는 것이 애써 안그런 척 한다고 해도, 역시나
참으로 심난한 나이다. 저녁때 서울 신당동 동성고에 제법
인기 있는 여선생님하고 통화를 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꽤 친했던 동아리 선배인데 학교 졸업하더니 갑자기
어디더라, 이대였던가 서울대였던가 암튼, 서울 어느
학교에 다시 들어가더니(편입이었던가? 헷갈리네) 급기야
수학 선생님으로 길을 들어섰다. 어쨌든간에 오랫만의
통화라 이것저것 묻다가 오랫만에 서로 약올리는 말도
주고 받다가 이 아줌마 하는 소리가,,,,,
내 목소리가 자기 가르치는 애들 목소리 같단다. 그러면서
"넌 왜 나이 들었으면 나이 든 목소리를 내야 할 거 아니냐"
라는데... -.-;;;

흠.... 순간 몇가지 생각이 교차하더군. 이나이에 어려보인다면
좋아해야 하는 건지, 나이값 못한다는 말이라면 기분나빠
해야 하는 건지. 요즘에는 좀 덜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귀엽다는 말을 꽤 들었었다. -.-; 그럴 때 드는 생각이
나이든 남자가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싫어해야 하는 건지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어제 저녁에
그 누나와 통화하면서 든 생각은 그것과는 또 다른, 좀더
심각한 것이었다.

나 여태껏 뭐한거지. 그래 역시 아무리 씁쓸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자기최면을 건다고 해도, 서른이라는 것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울수는 없는 것이더구나.
그래 어쩌면 서른이라는 거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김광석이 부른 노래가 "서른"이 아니고 "서른 즈음에"인 것도
아마 그것 때문일 거야. 30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 던져진 지 10년이나 지났을 때인데 강산이 변한다는
그 10년동안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 말이야.
어떻게 세상을 살고 어떻게 사람을 사랑했는가 하는 것.
거기에 단지 사람의 손가락이 10개라는 이유 때문에
서른이라는 나이가 사람 마음에 마법같은 조화를 부리는
거겠지.

"커서 모가 될거니?"

"다 컸는데.."

"크긴 모가 다 컸어. 애들 목소리 내는 주제에."

"그렇구나. 크면 모가 되지? 언제 다 크는 거지?"

"누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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