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되새김질

믿음에 대해서..

by Lbird 2009. 4. 3.

게시일 : 2001/04/12 (목) PM 07:52:20     조회 : 17

난 운동권이었던 적이 없다.
어쩌면, 내 주위에 보이는 것들과, 내 주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나에게 심대한 영향을 줄 만한 운동성을 갖춘 사람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내가 심약한 사람이거나..

그래도 무언가에 대한 믿음은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긋한 나이에 세상에 대한 낙관론을 품고 있던 어느 노교수만큼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세상은 제대로 되어야 하고.. 제대로 될 것이고..
단지 내가 할 일은.. 그것이 좀더 빨리 이루어지도록 조금만 힘을
보태면 되는 것이라고...

그런 낙관이.. 어떠한 특정 사상에 의해서였던 기억은 없지만,
배에 기름끼고 들어앉아 거들먹거리는 인간들과, 사악한 속에 간교한 말재주를
갖춘 인간들은 없어져야 할 것들이고, 결국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내가 지각을 갖춘 이후로 가지고 있던 것 같다..

물론 아주 어릴적,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고, 내가 그것을 바꾸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누군가가 그것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고, 결국은 바뀔 것이라고
말해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몽환적인 세상에 살고 있었으니..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느샌가, 내가 다시 어려진 것인지..
저 바다에 쓸어넣어야 마땅한 것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 환상같은 이야기이고, 결국은 바뀌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꿈 같은 일이고, 현실은 결국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대로 지속될 거라는 생각 말이다..

사람들이 말한다. 늙을 수록 옛것에 심취해서, 회귀본능이 작용한다고..
그래서 늙은이들은 진취적이지 못하고, 세상을 망칠 뿐이라고..
"일정 때가 좋았지."하는 말을 들으면, 젊은 사람 누구나 얼굴을 한번은
찌푸리게 될 것이다. 늙은이의 말이니까..

그런데,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니.. 그럼 나도 그만큼 벌써 늙어버렸다는
말인가??

학교에 오래 살면서, 내가 늙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늙은이가 옛것에 얽매이듯, 나도 80년대에나 흥하던 옛 사상에 취해 있다는 느낌.
그러니 거기에서 깨어 나야 한다는 느낌..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사용할 수 있는 말이야, 몇톤 트럭으로
몇날 며칠을 쏟아 부어도 부족하지 않지만.. 간단히 말해서..
고작 십년만에 세태가 그렇게 빨리 바뀌는가??
물론 몇톤 트럭 분량의 논리를 간단히 결론 지은 것이 아주 비 논리적인
문장이라서.. 나도 심히 당황스럽다..

(중략)

세상의 무관심..
세상을 고착시키는 가장 강력한 환경이다..

이제 더이상 내가 젊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십대 중반에 벌써 늙어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주먹 불끈 쥘 일에도.. 결국은 조용히 숙제나 하면서.. 시험공부나 하면서..
맘 아파서. 술이나 한 잔 하면서.. 아, 맞다. 요즘 술을 끊었다.
담배가 죽이면서..
몸이 망가지는 것 만큼 내 머리도 망가져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동아리에서 공연 준비를 하면서 학기를 완전히 말아먹던 그 때의
내가 지금 생각하면 가장 영민하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우습다.. 지금 나는 그 때 망친 걸 메우고 있는데..

메우고 있는데..

메우고 있다.. 내 마음도... 문을 메우고 있다...

'되새김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중에도 다시..  (0) 2009.04.03
anarchist  (2) 2009.04.03
이기주의  (0) 2009.04.03
사랑이 뭘까?  (0) 2009.03.24
껍데기...  (4) 200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