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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추위

by Lbird 2011. 12. 10.
태국 갔다 와서 시간도 얼마 안 된 듯한데 벌써 겨울이다. 더웠던 그 곳의 느낌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마음의 준비도 없이 겨울을 맞아서인지, 이번 겨울은 약간의 추위에도 견디질 못하겠다. 냉정하게 보자면 작년에 비해서 그다지 특별히 추운 건 아닌 듯한데, 이건 순전히 정신 상태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정신 상태였기 때문일까. 아주 오랫만에 금지된 그 단어를 브라우져에 던져 넣고 말았다. 그것도 맨정신으로. 그리고는 그저 하염 없이 화면을 쳐다보고, 또 하염 없이 천정을 바라보고, 예전에도 몇번이나 봤을 그 화면들을 보다가 그 페이지를 발견하고 말았다. 놀라고 말았다. 그 순간 마음 속에서 "안 돼!"라고 외치는 나를 발견하고는 또 덜컥 놀라고 말았다. 가만 따져 보면 내가 놀라고 그럴만한 입장과는 거리가 먼 것인데, 억울해 할 만한 입장은 더더욱 아닌데 어째 그랬을까. 그걸 더듬다 보니 작년 이맘때가 생각났다. 결기를 세우고 자라나는 기억들을 가지 친다고 가위를 들고 설치다가 결국은 실패했던 그 때다. 그래서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르고 말았을 때다. 그건 분명 염치 없는 짓이었다. 부끄러움에 눈도 뜨기 힘들었다.

부끄러움과 과거에의 향수 같은 것이 범벅이 되어 하릴 없이 늘어져 있다가 작년에 써 놓은 글들을 다시 읽었다. 그래. 거기에 있었다. 그 기억을 능히 덮을 만한 인물. 그런 인물을 찾았었는데. 내가 일년이 지나는 동안 했던 일들의 다른 모든 의미는 쇄하고, 남는 것은 오로지 그것 하나가 되고 말았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리고 나는 실패했다. 어째서 잡지 못해을까. 그러자 지난 일년이 너무나 덧없게 느껴졌다. 회사에 적응하고 나름대로 일도 열심히 했는데 그런 게 모두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억울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말도 못하게 그리워졌다. 포항에서의 일도, 지난 2년 간의 일도, 올 가을의 일도 모두. 그 모든 것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들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나니, Gollum's Song의 그 가슴을 헤집는 가사가 다시 떠올랐다. You are lost. You can never go home.

모르겠다. 난 또 살아가기 위해 가위질을 해야 하는 걸까. 이 생생한 기억은 또 무엇으로 덮어 두어야 하는 걸까. 그러다가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문득 쳇바귀를 한바퀴 돈 것 뿐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지난 일년 동안 겪은 것을 또 겪을 것 같은 느낌에 겁이 났다.

다시 또 그 수렁 속으로...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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