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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가을을 바라며

by Lbird 2010. 9. 21.
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여러 모로. 하지만 잊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더 잊질 못하겠더라. 그게 정말 어려웠다.
이제는 대강 두 달 가까이가 지난 여름 한가운데서, 나는 병을 앓는 것처럼 너를 그리워했다. 푹푹 찌는 날씨가 나의 기력을 쇠하게 하여 더 견디지 못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지의 시험에 들었던 갈라드리엘이 말했다. "모두가 나를 사랑하고, 모두가 나로 인해 절망할 것이다." 나에게는 네가 꼭 시험 받는 갈라드리엘 같았다. 너의 기억에 옭아 매이면서도 너로 인한 기억들을 저주했다. 끊임 없이 너를 생각하고, 또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생각하면서, 나는 너와의 기억을 못된 물건 취급했다.
그래, 알고 있다. 너의 기억을 애써 밀쳐 내려던 것은 정말로 너를 밀쳐내려던 것이 아니고 살려는 발버둥이었다. "이 기억에 매몰되어서는 나는 살아 남지 못한다." 그런 무의식이 너를 밀어냈지만 허사였다.
그 아프던 여름이 이제는 꽤나 지나서 바람이 선선한 계절이 오고 있다. 시절이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사람은 으레 더 감상적이 되기 마련인데, 실상 나는 지난 여름처럼 아프지는 않다. 살려는 내 의지가 너를 기억하려는 또 다른 의지를 이겨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잊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아니, 도대체 언제쯤에는 잊혀지기는 하는 건지 그걸 오히려 모를 지경이다. 요즘도 시시때때로 너를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이런 잡문을 두드리는 것은 나에게 내리는 선고와 같은 것이다. 아파하지 말 것이다. 일부러 애써 피하느라 아파하지 말 것이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너를 능히 지워버릴만한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지워지지 않는 너를 부질없이 지우려 하지는 않을테다. 지금은 괜찮다. 괜찮다. 너의 기억은 이미 만성이 되었고, 노력해서 지워질만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깊히 깨달았다.
언젠가 기억 속의 네가 다시 발작처럼 나를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오래 아파하지는 않을 테다.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 아파하는 것은 오히려 가벼운 벌이다.

휴일에 회사에 나갔다가 새벽에야 귀가를 하는데 또 다시 네가 찾아든다. 적당히만 그리워하다가 잠이 들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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