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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질

사랑.

by Lbird 2009. 4. 7.
게시일 : 2001/06/19 (화) PM 02:11:39     조회 : 11


내가 처음으로 여자에게 관심을 보였던 것은
아마도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니다)6학년 때일 거다.
원래가 어린 시절이라 하는 것은,
좋게 말하면 때 묻지 않았던 시절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이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 그저 눈에 띄었던
여자애 하나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 여자애 집이 무얼 하는지도 몰랐고
그다지 친숙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성격이 정확히
어떤지도 몰랐다. 그냥 학교 가서 얼굴 보면 기분이 좋고
한편으로 설레이고.... 쓸데없는 상상도 해보고...

그렇지만 워낙에 어리숙하던 시절이라(지금도 별로 나아지진
않은 것 같지만) 친해져 보려는 노력도 못하고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던 것 같다.
그게 첫사랑이었을까? 하긴 그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사람마다 갖다 붙이는 의미가 다 다른 상황이고 보니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굳이 끼워 맞추자면
"내 첫사랑은 짝사랑이었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 뭣도 모르는 어린애가
또래의 깨끗하고 귀여워 보이는 여자애(누구나 좋아할 만한)를
보고 나서 그저 혼자 좋아서 히죽히죽대는 것이 말이다.
13살. 애매한 나이에 접어드는 시기. 생각도 애매하고
신체도 애매하다. 그저 "애들"이라고 누가 가볍게 본다고 해도
딱히 대거리를 할 만한 것이 없는 시절.

그래도,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나의 모습이 싫어지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키도 작아 왜소하고 힘도 없고. 집도 가난해서 의복도
깔끔하지 못하고. 그때에도 여전히 학교 성적은 아주 좋은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 나에게 성적이라는 건 그다지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지 않았다. (성적이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중학교 올라가서 같은 반에 조금 과장해서 신동이라 불리는
녀석을 만나고 부터였다. 어릴때부터 좋았던 나의 성적이
우리 어머니의 몇 안되는 자랑거리 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 것도 아마
그때를 즈음해서였던 것 같다.)
저애는 저런데, 나는 뭘까.
우리집은 왜 가난할까. 나도 저런 물건 사서 자랑해 보고 싶은데..
나도 키가 크긴 크는 걸까. 싸움이라도 잘 해 봤으면..
내가 가진 거라고는, 쓸데없는 고집과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고
자부하는 나의 두뇌뿐이었다.

첫사랑?
이런.... 사랑이라니....
아마도 그건, 그때 내주위를 통틀어 가장 끼끗해 보이는 여자애를
통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동경과 원망을
키워가던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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