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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흉내내기

연애와 사랑

by Lbird 2007. 12. 6.
"기억과 추억을 구별하듯이, 나는 연애와 사랑의 경계를 알고 있다. 연애는 정신병적 징후이다. 몸 없는 마음의 질주가 연애다. 몸 없는 마음은 몸이 없어서 오직 상대방의 몸에 집중한다. 상대방의 몸을 광적으로 겨냥할 때, 상대방은 마음 없는 몸이다. 몸 없는 마음과 마음 없는 몸은 결코 만날 수 없다. K, 젊은 날의 내가 그러했다."
 - 시인 이문재 '길 위에서 몸을 생각하다' 중에서, 김다은 엮음 "작가들의 연애편지"에 수록

거의 일년 전 쯤에 산 책 "작가들의 연애편지".

본래 선물용으로 샀던 책인데 그냥 내 책장에 꼽혀 있었다. 일년이 넘도록 주인의 손길 한 번 닿지 않은 것이 불쌍하여 얼마전에 집어 들었는데, 꽤나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일단은 편지 한 편, 한 편이 그리 길지 않아서 침대에서 자기 전이나,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갔을 때나, 긴 컴파일이 끝나길 기다릴 때나, 세탁기가 빨래를 끝내기를 기다릴 때와 같이 잠깐씩 시간이 날 때 읽기에 좋다. 그리고 편지 하나, 하나가 좋은 글들이다. 작가들이란 원래 남에게 보일 글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한사람"을 위해서 쓰는 글은 그 나름대로 산뜻한 맛이 있다. 또한 이 글들은 작가들 자신에 관한 글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세계의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는 더 절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사 놓고도 이리 늦게 손에 잡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오늘 책을 읽다가 위의 구절을 발견했다. 이문재 시인은 기억은 날 것이고, 추억은 발효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연애는 몸을 잃은 마음이 다른 몸을 탐하는 것이고, 사랑이란 온전한 몸과 마음이 다른 몸과 마음을 만나는 것이라 한다. 가슴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다. 시인이 K에게 말했듯이, 나도 이렇게 얘기해야 할 듯하다.

"K, 지난 날의 내가 그러했다."

헌데, 시인이 온전해진 몸과 마음으로 K에게 다시 사랑을 말하려는 것에 비해, 나는 또 다시 K에게 사랑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날은 지난 일로 두어야 할 테다. Carpe diem! 과거에 얽매이지는 않으련다. 현재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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