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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주인보다 늙은 카메라 이야기

by Lbird 2006. 12. 18.
시작은 실로 엉뚱했다. 오랫만에 델리스파이스의 "키치죠지의 검은 고양이"를
듣고 싶어서 winamp에 델리스파이스 5집을 떨어뜨리면서였다. 원래의 계획대로
이 노래를 한곡만 반복하기 모드로 해 놓고 열심히 보고서를 적으면서 듣고 있었는데,
문득 그 위 아래에 나란히 놓여 있는 다른 곡들이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그래, 너희도 사랑해 주께. -o- 그리고 무한 반복 모드를 해제하고 전곡
반복 모드로 돌아갔는데, 그러고 음반을 한번 돌아서 7번 트랙의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라는 곡이 있었다. 이 음반을 몇 번 듣기는 했지만 이 곡을 유심히 들었던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 우선 라이카가 뭔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궁금증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뭔지 알고 싶다는 티끌만한 의욕이
생기자마자 구글에 대고서 "라이카"라고 쳐댔다.
http://www.google.co.kr/search?hl=ko&ie=UTF-8&newwindow=1&q=라이카

이런, 왠 카메라? 순간 나는 뭔가 다른 라이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래에 나오는 라이카라는 녀석과 카메라 모델이름하고는 도대체 얼른
매치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노래에 나오는 그 라이카가
뭔지 알아내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라이카를 찾는데 그럴 수록 나오는 건
이 고전적인 카메라 모델 이름이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글 제목이 있었는데
바로 이 글이다.
http://www.leica-gallery.org/leica_m/leica6_poormans.htm

가난한 사람아 카메라라니... 싸구려 10만원짜리 디카 말고 또 그런 게 있단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 라이카라는 카메라에 대해서 이것 저것을 알아보는데,
마우스를 클릭하고 스크롤하면 할 수록, 이 한번도 본 적 없는 물건에 정이 가더란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글에서 찾은 라이카 M3의 이미지

나름대로 카메라 계에서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라 아는 사람들은 높이 쳐주는 모양이지만,
문외한이 보기에는 거의 골동품의 포스를 가진 녀석이다. 그래도 카메라 하면 집안
기둥 뿌리를 팔아먹는다는 요즘 물건들에 비하면 정이 줄줄 흐르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가난한 사람의 카메라, 라이카"라는 글을 쓴 사람의 표현을 빌자면, "주인보다
오래 가는 카메라"라고 한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 몇십년 묵은 잡지 책속에서
뛰쳐 나온 것 같은 물건을 대할 때면 숙연해 지고, 저절로 미소를 머금고 쳐다보게 된다.
물론, 이름 값을 하느라 그다지 녹록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닌 모양이다. 기둥 뿌리는
아니더라도 (나의 기준에서는) 작은 방 하나쯤은 통째로 내 줘야 살 수 있는 물건이긴 하다.

그래도, 요즈음의 똑똑하다 못해 종종 알아듣지도 못하는 에러 메시지와 함께 앙탈을
부리기도 하는 전자제품들 속에서, 물건과 함께 호흡하고 서로에게 서로를 맞추고
부족한 것을 서로 메우는 이런 카메라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흐뭇한 일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수위에 이 사진 찍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 고상하고 품위 있는 물건을 그 언젠가는 나의 손에 한 번 쥐어 봤으면 하는
소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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