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oworld 복구

악몽

by Lbird 2006. 4. 11.
그 꿈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은 사실 괴로운 일이다.

나는 몇 사람의 완력으로 바닥에 눕혀져 있었고, 머리조차 마음대로
가눌 수 없도록 눌려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에는 야구 방망이로 보이는 둔기를 들고서 나를 위협했다.

"이걸로 머리를 치면 골로 갈 수 있어. 그래도 내 책임은 아니야."

너무 선명한 그 공포스런 순간에 비해서 내가 그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던
이유는 참으로 초라한 것이었다. 그들은 내 지갑의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꿈이기에 가능한 상황이겠지만, 나를 그런 완력으로 눕혀 놓을 수
있었다면 지갑의 돈을 꺼내어 가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었을 테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말이 안되는 상황이긴 했다.

그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에 입던 디자인이 구리구리한
양복 윗도리에 우리학교에는 없었던 넥타이들을 모두 매고 있었다. 그들의
체구는 이전까지 나의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던 압도적인 덩치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왜소했고, 주로 하나이던 그 덩치는 수가 불어나 있었다.
인간 정도 크기의 생명체에는 거대한 티라노 사우르스 한마리보다 여러마리의
렙터가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법이니, 오늘 새벽 나의 꿈은 참으로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어찌하여 그들이 나를 그런 초라한 이유로 압박하고 있었는지 자초지종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단지 머리속에 깊숙히 박혀 지금도 남아 있는 감정은
"반항"이라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는 너희에게 굴복하지 않겠어.' 그 꿈에서
나는 죽음 같은 공포와 위협을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그 따위 녀석들에게는
도저히 항복할 수 없다는 결심을 세우고 있었다.

야구 방망이 같던 그 둔기가 내 머리를 향해 내리 꽂혔다. 그런데 아직 나는
의식이 있다. 아마도 머리를 빗겨서 땅을 때렸던 듯하다. 그 독사 같은 녀석이
다시 비아냥거리며 위협한다.

"진짜로 골로 간다. 어서 내놔."

내가 무슨 말인가를 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무언이라도 내가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는 했을 것이다. 방망이가 다시 내리 꽂힌다. 충돌음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방망이가 무엇인가에 세게 부딪혔다는 느낌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시 공포가 엄습한다. 그리고 한번더 참아낸다.

방망이가 다시 움직인다. 이번엔 분명히 내 머리를 맞추고 말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순간은 한 없이 늘어져서 방망이는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는데도 내 시각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한 곳에 머물면서
엄청난 속도를 보이고 있는 그 방망이.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한 마디만 한다면... 그러면 살 수 있다.
눈을 감았는데도 방망이의 무시무시한 속도가 느껴졌다. 한 마디면...
한 마디면...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지갑을 넘겨 줄 수는 없다.
포기하지 않을 테다. 내 사색의 거대함 때문에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고, 포기하지 않은 댓가로 내 머리를 강타하게 될
방망이를 느낀다. 하지만 주변의 악의적인 외침과 음험한 으르렁거림들은 이제
들리지 않았다. 한 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암흑.

나는 눈을 떴다. 고개는 약간 젓혀진 채였지만 베개 위에 제대로 놓여 있었고
오른 손은 가슴 위에, 왼팔은 몸에 붙혀진 체로 뻗어 있었다. 다리도 가지런히
모여서 쭉 뻗은 체였다. 눈을 뜨기 전에 내 몸의 이곳 저곳을 느껴본다.

'아직 살아 있구나. 방망이는 어디 간 거지?'

엄청난 노력 끝에 왼팔을 움직여 시계를 본다. 6시 부근이었나. 시간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시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참 잠들어 있어야 할
그 시간에 내가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느낀 공포는
실제의 것이었을까? 혹시 나는 꿈 속에서 그것이 거짓 공포였음을 이미 알아챈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잠들기가 두렵다는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는다.

비로소 그 공포가 꿈 속의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가슴 위에
얹혀져 있는 오른 손을 통해서 빠른 속도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낄 수가 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몸을 움직여 모로 눕는다. 이제야 편안하다.
안심하고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


기시감에 눈을 뜨고 머리 옆의 핸드폰을 손에 잡는다. 몇 초 후에 알람이 울린다.

'Neoworld 복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사(東邪)를 생각하며..  (0) 2008.05.08
Neoworld 복구  (0) 2007.02.22
베렌과 루디엔  (0) 2006.03.07
The Lost Temple  (0) 2005.07.11
새벽에는  (0) 200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