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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촛불 집회, 편치 않은 마음

by Lbird 2008. 6. 9.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고, 아마 앞으로도 아닐 것 같다. 사실 어느쪽인가 하면, 운동권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간혹 운동권에 대해 욕을 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대학 1학년때부터 학교 노래패에 들어 있었지만 운동권이라 부르기는 당치 않았고, 당시 대부분의 노래패 회원들도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다닌 학교가 포항이라는 격오지에 있었던 탓도 있었을 테지만, 설사 서울의 큰 4년제 대학의 중앙 노래패에 있었다고 해도 나는 아마 운동권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NL이니 PD니 하는 파벌을 떠나서 그들이 요구하는 사항들에 대체로 공감하기는 했지만, 실제 그들의 행동방식이나 조직체계나 자주 보이는 아집에 분노하곤 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예전 운동권들의 정례적인, 또는 비정례적인 시위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해지고는 했다. 주의주장에는 공감하지만 꼭 저렇게 시위를 해야 하는가. 꼭 뭘 던져야 하고 때려야 하는가. 꼭 저런 군대를 닮은 조직 체계 안에서만 싸워야 하는가. 그래서 그들을 보는 나의 시각은 싸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편치 않았다.

요즘 온 나라가 또 시끄럽다. 연일 이어지는 시위. 이명박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포항에서조차 2-3일에 한번씩 촛불 집회(공식적으로는 촛불 문화제)가 열린다. 지난주 토요일에 오거리 농협 앞, 한나라당 모 국회의원의 사무실이 마주보이는 곳에서 촛불 집회가 있었고 나도 그곳에 있었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촛불 집회였다. 딱히 어떠한 틀이 없이 진행된 집회였다. 문화제라는 타이틀을 빌어 열리는 탓에 꼬마들의 사물놀이도 봤다. 집회 자체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전에 계획되지 않고도 마음껏 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을 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의 형태를 본뜬 것이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다.) 무서운 투쟁가가 울리지도 않았고 악에 찬 구호를 선동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이들이 옆에서 놀고 있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집회였다.

그런데 그런 순한 집회를 참가하기 전에 나는 불편한 마음 하나를 가지고 있었고, 참가하고 나서는 불편한 마음이 하나 더 생겼다.

이런 집회는 내가 기억하는 "집회"나 "시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에 그 옛날 운동권들의 집회나 시위를 보면서 느끼던 불편함은 아니었다. 촛불 집회에 가기 전에 느낀 불편함은 말을 조금 바꾸자면 부끄러움과 같은 것이었다. 이 정도의 작은 참여도 하지 않고 있다니..하는 것에서 비롯된 불편함이다. 옛날에 느끼던 것이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였다면, "나는 이 정도도 못하는가"하는 것이 이번에 느꼈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오거리로 후배 둘을 데리고 나갔다. 이 정도로 나의 불편함(부끄러움)이 한순간에 사라지진 않을 테지만 어느정도 위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집회에 참여하고 나서 불편한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이것은 사실 집회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집회 자리에서 학교에서 노조활동하시는 분을 만났다. 그날 집회 장소와 시간을 알게 된 것도 사실은 그 분이 메일을 보내서 알게 된 것이었고, 옛날 민지네로 인한 인연으로 인사도 나누고 집회 동안은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날 집회에는 한동대 학생 셋이 나와 있었는데 (더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참석자 조사 같은 것은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서울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해서 찍은 영상들과 직접 만든 노래와 또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보여주었다. 후배 하나와 나도 티셔츠를 하나씩 구입했다. 열심히 참여하는군. 보기 좋다...그 때는 그냥 그 정도만 생각했었지. 그런데 다음날 포스비에 오르는 글 하나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집회 동안 옆에 있었던 그 분이 포스비 어나운스먼트 보드에 6월 10일 촛불 집회에 대한 안내를 올리면서 끝에 붙인 말 때문인데, 한동대 학생들은 열심히 어울리고 있는데 우리학교 학생들은 참여가 저조하여 보기 안 좋다는 것이다. 인용하자면 "반면 포항공대 학생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열심히 활동하지만 포항시민이 보기에는 좀 무책임해 보입니다." 무책임이라...

나 같은 경우 워낙 아웃사이더 기질이 풍부한지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진다. 꼭 중앙에 나서서 뭔가를 해야만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주변에서 박수를 쳐주는 것으로는 안되는 것인가. 민주주의라는 것이 탄생된 배경에는 모든 국민(또는 공동체 구성원)이 중앙에서 아비규환으로 다투지 않아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가장 중요할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의견(또는 대표자)에 지지를 표명하는 방법은 역시 자신도 중앙에 서서 손을 흔드는 것도 있지만 단상 아래에서 박수를 보내는 것도 있고, 공동체의 의견이 질서 있게 표출되기 위해서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한,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도 자신이 속한 깃발을 높이 들고 꼭 그 아래에 모이지 않더라도 그저 여기저기 군중 속에 다만 서 있어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모르긴 하지만, 그날 집회 장소에 우리학교 학생들이 더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꼭 포스텍이라 크게 쓰여진 깃발 아래에 모여야 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예전 운동권들이 흔히 했듯이 학교별로, 혹은 단과대별로, 과별로 깃발을 드는 모양을 나는 본래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단체의 대표성을 꼭 나타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가만히 가서 서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우리학교 이름이 써진 깃발이 있었다면 좀 덜 뻘쭘하게 서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단지 그 정도이다. 단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우리학교 학생도 이렇게 참여합니다!하고 말하기 위해서 깃발을 들고, 중앙에 나가서 자신의 소속을 밝히는 것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일까.

6월 10일은 87년 6월 항쟁으로부터 21년이 되는 날이다. 포항 오거리에서도 큰 행사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나도 특별히 바쁜 일이 없다면 또 후배 몇명을 모아서 나가 볼 생각이다. 하지만 깃발을 들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테다. 무대에는 자유 발언을 하러 올라갈지도 혹시 모르겠다. 지금 여기 써 놓은 말들을 하러. "그저 조용히 촛불을 들고 앉아서 박수만 치는 것도 참여의 한 방향임을 알아 달라"고 말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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