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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흉내내기

새드무비

by Lbird 2006. 3. 22.
얼마 전에 새드 무비를 봤다.

이런 저런 전개 속에서 언뜻 언뜻 비치는 비극적 결말에 대한 예고들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영화의 내용은 밝은 것이었다. 하지만 뭐 영화의
제목 자체가 새드 무비이다 보니 모든 에피소드의 결말이 슬픈 것이었다.
이 영화가 어제밤 갑자기 생각난 것은 영화에 대한 감동 때문은 아니었다.
본 지 꽤 지난 이 영화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순전히 정우성과 임수정 커플의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소방관인 정우성은 화재현장에 갇혀서 마지막을 기다린다. 유독 가스가
차 오르고 화염이 치솟는다. 그리고 정우성은 화재현장에서 애처롭게
간당거리는 CC-TV를 향해 걸어온다. 얼마전에 배운 후에 임수정에게
써먹었다가 핀잔을 들었던 그 수화를 CC-TV를 향해 다시 말한다.

"사랑해. 가슴 만져도 되겠니?"

수화를 할 줄 모르는 정우성이 임수정의 동생에서 그 수화를 배우면서
들은 뜻은 "영원히 사랑할께." 였다. 임수정은 사고가 난 며칠 후에
소방서에서 CC-TV 녹화 비디오를 보고 있고, TV 화면을 어루 만지며
"그래, 나도"라고 말한다. 눈물이 흐른다.

정우성의 마지막 수화는 사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통하긴 한다.
"사랑해. 지금 널 만지고 싶어. 그런데 그럴 수가 없네." 라고 해석해도
상관 없을 것이고, 그냥 "영원히 사랑할께."라고 해석해도 되겠다.

그런데, 어제밤 갑자기 이 영화가 생각난 것은 두번째 해석이 아니라
첫번째 것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 너무나 그리워서 자신의 눈 앞에
그녀 얼굴을 그리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손을 뻗어 그 상상속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실제의 얼굴을 기억해 내고, 실제의 손끝의 감촉을
기억해 내지만, 역시 지금 이 순간에는 만질 수가 없는 아쉬움.

어제밤 갑자기 "새드 무비"가 생각난 것은 그런 아쉬움과 그리움에 대한
공명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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