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정리 1

이런 저런... 2009/12/20 00:38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느니 짐 정리를 해야 하는데, 사실 보낸 시간에 비하면 놀랍게도 정리할 짐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몇가지, 택배회사 박스에 마구 구겨 넣어 보내기엔 마음에 걸리는 물건들이 있다.

그 첫번째는 지금 연구실 벽에 걸려 있는 1000pcs짜리 직소 퍼즐들이다. 단순히 맞추는 데에 걸린 시간도 시간이지만, 맞추는 동안 들었던 생각들이 연구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들을 볼 때마다 돌이켜 지는지라 역시 가볍지 않은 물건들이다. 솔직히 모두 가져가고 싶지는 않다. 그것들은 이 곳 포항에 속한 것들이고, 이미 나는 이 곳에서의 기억을 땅에 묻고 가리라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리라고 마음을 먹고 나도, 머리 속의 기억이야 묻고 나도 언젠가는 스믈스믈 기어 나오기도 할 것이고, 지웠다고 완전히 지워지지도 않는 것이니, 굳이 꺼내볼 생각이 들면 꺼내 볼 수도 있는, 말하자면 잃어버리지 않는 것들이다. 반면에 물건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버리고 가면 정말 버리는 것들이다. 내 머리 속에 근거를 두는 기억이라는 것과는 다르게, 물건들은 내 손을 떠나면, 남이 아무리 잘 관리해 주겠다고 해도 결국은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다. 연구실 벽에 걸린 채로 그냥 두고 싶지는 않다. 파서 묻고 싶지도 않다. 가져가고 싶지도 않다. 제일 좋은 것은 본래 그것들이 속한 곳으로 보내주는 것인데, 지금은 도대체 어디로 보내야 그것들이 목적지에 닿게 될 것인지, 목적지에 닿더라도 버려지지 않고 보존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퍼즐들 중에서 특히 처치 곤란인 것은 클림트의 키스이다. 그건 원래가 한 사람에게 속한 물건들인데, 그건 본래 주인이 그 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고, 그 퍼즐을 완성하는 동안 내 머리를 지배하던 사람이 사람이었다는 소리이다. 물론 지금은 어찌해 볼 수가 없다. 전화번호는 봉인되었고, 주소는 알 수 없다. 주변의 인맥을 동원한다고 해도 알 수가 없는 것이, 몇 해가 지나는 동안 그와 관련한 나의 인맥도 함께 붕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정말 처치 곤란이다. 버릴 수도 없고, 가져갈 수도 없고, 아무에게나 줄 수도 없다. 포항에서 지낸 16년 세월을 통째로 마주하는 기분이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일 집에 다녀오기 전에는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