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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흉내내기

읽기에 괴로운 책들

by Lbird 2007. 8. 20.
나는 대체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본래 책을 속독하는 재주는 없어서 진짜로 "훑어 보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경우가 아니면 아주 천천히 글자 하나하나를 씹어먹을 듯이
읽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을만한 책들을 신중히 고르는 편이기도 하다.

최근에 몇년 동안 틈틈히 하고 있는 일들 중에 하나가, 예전에 제목이나
저자에 대해서 들어는 보았지만 읽어보지 못한 유명한 책들을 읽는 것이다.
이런 식의 책 고르기는 다분히 앞에 말한 나의 느린 독서 속도와도 연관이 있다.
조금 더 얹자면, 나의 귀중한 시간을 별로 유익하지 않은 독서에 보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왠만하면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검증받은 책들이 좋다.

그런데.... 오늘 부로 나는 이러한 나의 책 고르기 전술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원래 발단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이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고, "자기계발"이라는 타이틀보다는 "감동"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택한 책이었고, 결정적으로 책 제목을 너무 많이 들어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써 놓은 서평마다 칭찬 일색. 누군가는 죽기 전에 성경 다음으로
(나에게는 좋지 않은 비유다 ㅋㅋ) 곁에 놓고 싶은 책이랐다나.

하여간에 그 책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나는 본래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노골적으로 써 놓은 것보다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또는 끔찍하게 꾸밈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강한 힘을
실어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때때로 그 명확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엉뚱한 교훈을 얻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책이란 원래 그래야 하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시작부터가 심상치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사랑해야 하는 "모리"라는 인물.
책 표지에서부터 이 사실은 의심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쓰여진듯한 이 책은, 실은 서구 사회에서 대표적인
미덕으로 여겨질만한 삶의 방식을 대단히 노골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여기 이 훌륭한 모리의 삶을 보라. 너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야
착한 사람이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차가운 가슴을 지닌 인생의 패배자일 뿐이야.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말이지. 그래그래, 이 책을 쓰는 나는 돈이 좀 많긴 해.
그렇다고 그걸 부러워 해서는 안돼. 모리를 본받으라고. 내가 아니라."

나는 역겨웠다. 그리고 책을 놓았다.
그리고 집어들고 며칠 동안 들고 다녔던 책이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였다.
이 책의 표지에는 무슨무슨 조사에서 베스트셀러에 뽑혔다고 광고하고 있다.
그리고 서평에서처럼 역시나 "감동적인" 7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돼 있다.
"감동"이라는 것을 빌어 사회가 바라는 획일적인 인간상을 전하려는 이 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한동안 읽었는데(2/3을 읽었다. 나머지는
"훑어" 보았다.) 그건 순전히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이야기의 방식이었다.
어떤 인생의 패배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역사상 유명했던 (물론 미국적인
관점의) 위인들을 방문하여 인생의 철학을 받아 온다는 설정이다.
SF도 아닌 소설에서 그런 방식을 취한 터라 어느 정도 호기심이 생겼던 것은
사실인데, 방금전에 드디어 이 책을 포기하고 말았다.

심심하면 등장하는 "하느님의 뜻". 아무리 번역을 "하느님"으로 해놔도
실제로야 개신교의 하나님이겠지. 이것도 나의 심기를 심히 불쾌하게 했지만
책을 읽다가 더 짜증나는 것은, 주인공인 폰더씨는 시종일관 깨우침을 당하고
어리석을 질문을 하고 감동을 받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이 방문한 사람이
알 수 없는 (아마도 "하나님"의 뜻으로) 이유로 적어 주게 되는 삶의 좌우명을
감사히 받아 온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위인들을 바라보는 그 대단히 평면적인
시각에 나는 짜증이 났다.

대단히 미국적인 책이었다. 다시는 저런 책을 읽지 않으리라.

(오타 천지.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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