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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흉내내기

"장미의 이름" 중에서,

by Lbird 2004. 6. 25.
상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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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랑이라는 병은 괴질(怪疾)이기는 하되 사랑 자체가 곧 치료의 수단이 된다는
이븐 하즘의 정의는 인상적이었다. 이븐 하즘에 따르면, 사랑이 괴질인 까닭은,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통찰인가!
나는 그제서야, 그날 아침 내 눈에 보인 것들이 그렇게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까닭을 이해했다. 안치라 사람 바실리오에 따르면 사랑은 눈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는 병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들뜨거나,
혼자 있거나, 혼자 있고 싶어하거나 (그날 아침, 나는 얼마나 혼자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던가) 공연한 심술을 부리거나 바로 이 심술 때문에 말수가
적어지거나 한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심한 자기 학대 증세를 보이면서 하루 종일 침상을 떠나지 않는데, 이
상사병 증세가 지나쳐 뇌가 영향을 받게 되면 정신을 잃거나 헛소리를 하게 된다는
대목에서는 겁이 덜컥 났다(그러나 내 경우는, 맑은 정신으로 장서관 미궁을 조사할
정도였으니 그런 중증은 아닐 터였다). 이 병이 악화되면 목숨을 앗을 수도 있다는
대목도 꺼림칙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여자를 생각하다가 육체가 희생되어도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성녀 힐데가르트의 글도 읽었다. 이 성녀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그날 느꼈던
것과 같은, 여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느끼게 되는 우울증이야말로 천국에서
경험하는 완벽한 평화의 상태와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중증에 속하는 <암담함과
비참함을 느끼는 우울증Melancholia nigra et amara>은 뱀의 숨결을 맡거나 악마가
틈입하는 데서 생기는 병이었다. 다른 이교도 학자들의 주장도 이와 비슷했다. 아부
바크르 무하마드 이븐 자카리야 아르 라지는 [의학총서Liber con-tinens]에서
상사병으로 인한 우을증을 낭광증(狼狂症)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상사병에 들려
끝없이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은 하는 짓이 늑대와 비슷하다는 그의 증세 묘사는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그에 따르면 상사병의 초기 증세로는 우선 외모에 변화가
오고, 이어서 시력이 약해지고, 눈이 들어가며, 여기에서 조금 더 발전하면 눈물이
마르고, 다음에는 혀가 마르면서 혓바닥에 농포(膿疱)가 생기고, 몸이 말라가면서
시도 때도 없이 갈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병자는 대낮에도 침대에 누워
이불로 얼굴을 가리게 되며, 얼굴과 목에 개의 이빨 자국이 나타나다가 결국은
늑대처럼 묘지를 어슬렁거리게 된다.

아비체나의 인용문은 나에게, 나 자신이 까발려진 듯한 느낌을 안겼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상사병은 이성인 상대의 얼굴, 태도, 행동에 대한 연속적인 상상에서
비롯된 편집증적(偏執症的) 우울증이다. 아비체나는 흡사 나를 관찰하고 상사병을
그렇게 정의한 것 같았다. 상사병은 처음에는 병이 아니나, 사랑의 갈증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에는 강박적인 병으로 이행하여(나의 갈증은... 하느님 용서하소서...
채워졌는데도 나는 왜 그런 증세를 느꼈던 것일까? 전날 밤의 죄 많은 춘사(春思)는
그런대로 만족한 상태에서 끝나지 않았던가? 이것이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대체
만족스러운 것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이윽고 눈꺼풀이 떨리고,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까닭없이 울고 웃게 되고, 급기야는 심장의 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실제로 내 맥박도 빨라지고 있었다. 이 글을 읽을 동안 내 호흡은 거의
멎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비체나는 또 갈레노스가 고안한 상사병
환자의 진단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즉,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사랑의 대상이 될 만한 이성의 이름을 부르면 특정인의 이름에서 맥박이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글을 읽다 말고, 사부님이 불쑥 튀어 들어와 내 손목을 잡고 내
맥을 짚을까 봐 더럭 겁이 났다. 참으로 창피한 일이었다.

아비체나는, 상사병의 유일한 치료 수단은 상사병의 대상과의 결합이라고 했다.
아비체나는, 똑똑한 사람이기는 하나 역시 물정을 모르는 이교도였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든, 주위의 사려 깊은 주선을 통해서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성별(聖別)되어 그런 병에는 걸릴 수도 없고 걸려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설사
걸린다고 해도 대상과의 결합을 통하여 이 병을 치료할 수는 더욱 없는 가련한
베네딕트 회 수련사의 팔자를 전혀 고려에 넣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팔자가 나 같은 사람은 고려에 넣고 있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경우에 대한 대비는 있었다. 즉 마지막 대증 요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온탕욕(溫湯浴)이 그것이었다.

하면... 베렝가리오는 죽은 아델모에 대한 상사병을 치료하러 욕장에 들어갔던
것일까? 인간은 동성(同性)에 대해서도 상사병에 걸리는 것일까? 이거야말로 짐승의
음욕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내가 그 여자와 함께 밤을 보냈던 것도 짐승의
음욕에 결주어질 만한 탐욕 때문이었던가?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 달콤한 사랑이
짐승의 음욕일 리 없다... 아니다, 아드소여, 네가 틀린 것이다. 그날 밤의 춘사는
악마가 보낸 환상이다. 따라서 짐승의 음욕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죄를 짓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죄를 짓고 있는 너 아드소여...

아비체나의 치료법은 계속되어 있었다. 두 번째 방법은, 소시적에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힌 적이 있는, 늙은 여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치료의
한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수도원에서 늙은 여자(젊은 여자는 물론이고)를
찾아낼 길 없었다. 그렇다면 수도사를 하나 붙들고 통사정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대체 누구에게? 이 사라센 인이 권하는 마지막 치료법, 즉 상사병에 걸린 사람에게
계집종 여럿을 붙여 난교(亂交)하게 한다는 치료법은 나 같은 수도자에게는
천부당만부당했다. 결국 수도자가 상사병에 걸릴 경우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다.
나는, 세베리노에게 약초를 부탁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까지 해보았다.

그런데 빌라노바 사람 아르날도의 글에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아르날도라면,
사부님이 극찬하던 분이었다. 아르날도에 따르면, 상사병이란 체액의 분비와 정신의
고양(高揚)이 지나친 데서 생기는 병이었다. 이로 인해 혈액(생식의 종자를
지어내는)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종자, 즉 <성욕의 상황complexio venerea>을
조성하고, 결합의 욕망을 강화시킴으로써 몸의 각 기관의 습도와 온도를 높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엔체팔루스>, 즉 뇌의 중앙에 있는 공동(空洞)
뒷부분은, 오감이 받아들인 무분별한 자극을 수용하고 그 자극을 평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오감이 감지한, 대상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게 되는 경우, 이
평가 기준이 위축되면서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의 허상만 밝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슬픈 일이 기쁜 일로 보이게 되는 등의 판단 착오가 생기면서 육체와 정신이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육체와 정신이 불길에 휩싸이게 되는 까닭은, 기쁨을 느끼는
순간 온몸의 열기가 몸의 표면으로 치솟기 때문이다(절망하는 순간에는 이 열기가
몸 깊숙이 스며들기 때문에 한기를 느낀다). 그러니까 아르날도의 치료법에 따르면,
사랑하는 대상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싹을 잘라 버리면 생각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면 나의 병은 치료된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대상을 다시 만날 가능성이, 혹은 희망이 나에게는 거의,
혹은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취할 수
없고, 취한다고 하더라도 수습할 수 없고, 수습한다고 하더라도 내 곁에 둘 수
없었으니, 이는 수도에 전념해야 하는 나의 수련사 처지와, 내 집안이 나에게 지운
의무의 굴레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구원을 받은 것이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서책을 덮었다.
바로 그 순간에 사부님이 그 방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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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회 수련사 아드소는 해법을 찾았으나 나는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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